비난은 쉬웠다. 그건 분명한 일이었다. 언제든 비난의 화살을 남에게든 나에게든 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와 새삼 깨닫는 건 누군가를 비난할 때 잠시 머리는 시원할지언정 가슴에는 진흙처럼 '무언가' 진득하게 달라붙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비난은 결론적으로 해로웠다. '다른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도덕책을 기계적으로 읊는 소리가 아니다. 비난은 나에게 '실질적으로' 피해를 준다. 남보다는 나를 망친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해서 절제해야 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때의 감정은 '불'과도 같아서 자꾸 입으로 옮길수록 불이 붙고 번지게 된다. 소화기를 준비해두지 않으면 불쏘시개가 산불이 되어 나를 태우게 된다. 하지만 불처럼 솟아오르는 그때 그 감정을 참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삭히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 그 순간을 아주 잠시만 일시정지할 수만 있다면 1초라도 잠시 멈출 수 있어서 솟아오르려는 그 불을 소화기로 확 끌 수 있다면 스스로의 어느 단계를 넘어서는 계기가 된다.
비난은 일어날지 아닐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앞선 걱정이 되고, 들어주는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며, 나중에는 스스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된다.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비난은 더욱 해롭다. 이러한 경향은 정이 많을수록, 즉 다른 사람에게 기대가 많을수록, 마음이 타인에게 향해 있는 사람일수록, 자책하기 쉬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가슴 아프고 속상해서 상처 받은 마음을 비난으로 돌리기는 쉽지만 그렇게 해서는 궁극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사실 그렇다는 걸 모두가 머리 한 구석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비난할 때 마음을 관찰해보면 마음에 '감사함'이 없는 경우가 많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잔잔하게 감사함이 흐른다면 누군가를 비난할 에너지를 나에게 쓰고 싶어진다. 감사함이 없으면 결핍이 생기고 결핍은 비교와 비난, 험담을 불러온다. 인정의 결핍을 느끼면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고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마음이 작아지기 쉬워서 방어적으로 누군가를, 세상을 비난하고 싶어진다. 물질의 결핍을 가지면 돈에 집착하고 돈으로 사람 대우를 판단하여 돈 있는 사람은 과대 평가하고 돈 없는 사람은 과소 평가한다. 외모의 결핍을 느끼면 모든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고 외모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외모 상하로 사람을 두고 왜곡된 시선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그외 모든 결핍들도 결국 감사함이 없는 마음의 문제가 뿌리가 되어 인생에서 열매 맺을 수많은 가지와 이파리를 죽게 만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사함을 심을 수 있을까. 가장 어렵지만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다. 우선 나를 용서해야한다. 나를 용서해야 남을 용서할 수 있다. 사실 나를 비난의 눈초리로 감시하고, 손가락질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나였다. 숨쉴 틈도 없이 벼랑 끝으로 여러번 몰아부쳤던 것도 나다. 이렇게 무의식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 반복했던 나다.
이 세상에서 딱 한 명만 용서해야한다면 가장 먼저 나를 용서해야 한다. 그래야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용서도, 사랑도, 우정도... 용서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난 과거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현재의 잣대로 들이대지 말고, 그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으니, 유행가 가사처럼 지나간 일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으로 그대로 두는 것이다. 인간 군상이 할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을 했으니 과거를 그냥 그렇게 흘러가도록 두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지내온 것에, 그럭저럭 버티며 잘 살아온 나를 인정해주자. 남들도 다 그런데 뭘, 이렇게 깎아내리며 비교할 것도 없다. 그대로 인정해주자. 진심으로 그렇게 나를 끌어안듯 인정해주면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씩 자그마한 감사의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온해진다. '감사의 물줄기 불러오기'를 여러번 하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에 감사함이 강처럼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일단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때로는 물줄기가 얕아질지언정 바싹 마르진 않는다. 이미 감사의 물줄기를 불러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줄기가 깊어질수록 잡념은 사라지고 나를 위한 일을 할 것이다.
스스로를 위한 일을 하다보면 가끔은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그러면서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나의 세계도 넓어진다. 선순환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만가만 세계가 넓어지다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좀 더 생기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비난의 악순환을 끊고 스스로를 용서하며 감사함을 마음에 품는 것. 이걸로 달라지는 일들이 정말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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